유상민 목사 (한우리교회)

 지난 2010년 10월 1일에 매형이 죽었다. 매형은 내게 각별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친형님 같았고, 때로는 엄한 아버지 같았다. 무엇보다 매형은 내 삶을 코치해주는 큰 스승이셨다. 그런 매형이 죽었다.

매형은 2009년 5월에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직장암 판정 이후 매형이 죽을 때까지 우리 가족은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하나도 응답되지 않았다. 처음 매형 대장에 혹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을 때 우리는 그것이 암이 아니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그런데 암이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는 개복 수술을 하지 않고 내시경으로 암세포만 잘라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개복을 했다. 개복 수술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암세포가 다른 곳에 전이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그런데 개복을 해 보니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암세포가 전이되어 있었다. 매형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분들이 방문해서 기도해 주셨다. 그런데 매형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졌고, 결국은 그렇게 죽었다.

매형과 비슷한 시기에 교단의 선배 목사님도 6년째 암으로 투병 중이셨다. 많은 분들이 선배 목사님을 위해 기도했다. 선배 목사님도 살기 위해 열심히 치료를 받았고, 살기 위해 열심히 기도 했다. 매형과 선배 목사님을 보며 ‘우리는 왜 이렇게 삶에 집착하나’ 생각이 될 때가 있었다. 사는 것만이 주의 영광은 아닐텐데... 때로는 죽음으로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도 있을텐데... 그때 선배 목사님은 기도 부탁을 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거부당했으니 이제는 그야말로 주님 밖에는 없네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능력을 행했다. 그것을 부러워한 마술사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를 쫓아내려 했다. 그러나 악귀는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악귀가 달려들어 그들을 부끄럽게 했다(행 19:8-20). 마술사들에게 예수님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자기를 구원하고 인류를 구원할 이름이었다. 예수님은 눈속임이 아닌 살아계신 실체였다.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당하고도 살겠다고 기도 부탁을 하던 선배 목사님! 그분은 단지 살기 위해서만 기도를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분은 아마도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가족도 그랬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도 들어 주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부르고, 그 분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그 분의 손을 붙잡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아쉬울 때 찾아와서 눈가림이나 하는 대상이 아니라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붙들어야 할 살아있는 실체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병들었을 때에도, 우리의 기도가 외면당할 때에도, 그리고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여전히 살아계신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가 마지막까지 붙잡을 소망이셨다. 그것이 살고 죽는 문제 보다 더 중요했다.

어느 사람이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슬피 운다. 설움에 겹도록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부르다가 돌이 될 만큼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가 부르는 이름은 허공 속에 산산이 부서질 뿐이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차이가 마치 하늘과 땅 사이만큼 멀다. 부르다 지쳐 죽을 만큼 그 이름을 불러보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대답이 없고, 그 사람은 결국 심중에 있는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다. 김소월의 ‘초혼’이다. ‘초혼’이란 혼을 불러낸다는 말이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낸다는 것 자체가 허무하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는 이름 예수는 허무한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부르는 이름 예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이다. 우리가 부르면 들으시고, 우리가 질문하면 대답하시는 살아계신 실체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한다. 그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010년 10월 1일 매형이 죽었다. 우리는 매형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옳으시다고 고백하며 감사했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