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로 목사  [효민교회 ]

지난 1월 영하 8~9도를 오르내리는 몹시 추운 날씨에 30분 정도 외출을 했는데 정수리가 시려 장갑 낀 손을 머리위에 얹었더니 참 따뜻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땐 손을 내렸다가 아무도 없을 땐 다시 손을 머리위에 올리면서 집으로 돌아 왔다. 그날 저녁까지 정수리에 통증이 있어 따뜻한 타월을 머리 위에 얹고 있어야만 했다.

몇 해 전부터 시작된 탈모가 그 원인이었다. 풍성한 머리카락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천연 방한모(防寒帽)라는 사실을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풍성했을 땐 단 한 번도 그 소중한 머리카락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혜를 깨닫지 못한 나의 미련한 모습을 보며 그 동안 하나님 앞에 참 염치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비슷한 또 한 번의 경험이 있었다. 몇 년 전 6월 초순 어느 날 예배당 앞에 심겨진 느티나무 마른 가지를 자르기 위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갔다. 톱으로 나무 가지를 자르는데 사다리가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땅에 떨어져 오른쪽 팔목이 골절되고 말았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서 깁스를 하고 돌아왔다. 그 후 뼈가 붙기까지 2~3개월간 극심한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오른손잡이가 왼손 하나로 글씨를 쓰는 것과 식사를 하는 것이 그랬고, 옷을 벗고 입는 것과 더운 날씨에 마음대로 씻을 수 없는 처지가 그러했다. 서툰 왼손 하나로 생활한다는 것이 그토록 불편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가슴에 사무치도록 깊이 깨달은 것은 건강한 팔의 소중함이었다. 건강한 양쪽 팔로 60년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건강한 팔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본 적이 없었다. 오른 팔의 소중함과 그 은혜를 나이 60이 훨씬 넘어 손목이 부러진 후에야 깨달은 내 자신의 미련한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이뿐이랴. 일상생활 중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귀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수없이 인용하며 설교를 했지만 그 의미를 가슴에 사무치도록 깨달은 것은 팔목 골절상을 입은 후였다. 숨겨진 은혜가 얼마나 크고 많은지! 미처 깨닫지 못한 은혜가 얼마나 크고 많은지! 그래서 하나님은 세세히 다 설명 하실 수가 없어서 다만“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것을 깨달았다. 감사해야할 이유를 어찌 다 밝힐 수 있겠는가? 그 수를 헤아린다면 수백, 수천, 수만 가지가 넘을 텐데, 그 은혜의 목록을 어찌 일일이 다 밝힐 수 있겠는가?

인간은 공기 없이 3분 이상 살 수 없는 존재라는데, 맑은 공기 공짜로 마음껏 마시면서 그 공기에 감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간이 햇볕을 쬐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6개월 정도라는데 날마다 쬐이는 햇볕에 감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바다에서 헤엄치듯 살면서, 그 은혜를 누리고 있을 땐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 그 은혜가 사라진 후에서야 그때가 은혜였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은 인간의 또 다른 미련함이 아닌가? 오히려 없다고, 힘들다고, 왜 안 되느냐고 불평을 일삼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그날 이후로 아침저녁 기도할 때 마다 10가지 이상씩 하나님께 감사드리겠노라 다짐하고, 지금까지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나님!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큰데 미련하여 깨닫지 못하고 지금까지 염치없이 살아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