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나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 구원의 확신도 없었다. 그 결과 6년 반이라는 긴 신앙의 방황기를 지나야 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내게 늘 같은 말을 했다. “술, 담배 끊고 교회 나와라.”
그러나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부담이었다. 당시 나에게 술과 담배는 삶을 버티게 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내려놓으라는 요구는, 결국 교회를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다.
감리교 목사였던 친구의 끈질긴 권유로 억지로 교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나를 더 위축시켰다. 담배 냄새를 두고 수군거리는 소리는 결정적이었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예배 후 인사를 하던 중, 담뱃갑이 목사님의 발 앞에 떨어진 것이다. 도망치고 싶었던 그 순간, 목사님은 담뱃갑을 주워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서는 피워도 됩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피우지 마세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열었다. 그날 이후 교회는 부담이 아니라 자유가 되었다. 결국 나는 교사로 섬기게 되었고, 그 작은 순종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변화는 강요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경험했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여전히 문턱이 높다. 밖에서 보면 거룩한 성처럼 보이지만, 정작 들어가기는 어려운 공간이 되어버렸다. 제사 문제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쉽게 “잘못된 것”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제사는 부모를 향한 효의 표현이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던지는 말은 복음이 아니라 장벽이 된다. 오히려 “그래도 괜찮으니 함께 교회에 가자”는 한마디가 길을 연다. 믿음이 들어가면 삶은 자연스럽게 변화된다. 윤리로 문을 막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
나 역시 교사로 섬기던 시절,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선교사의 간증을 들었다.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어가는 아이들이, 단 한 번의 영양주사로 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담배를 끄며 기도했다.
“하나님, 담배를 끊게 해주시면 이 돈을 선교비로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나는 담배를 끊었고, 선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복음을 알고, 믿고, 구원받는 은혜를 경험했다. 성령의 충만도 경험했다.
나는 지금도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확신이 있다.
복음을 빼고는, 다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거룩함은 외형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순간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렸다는 데 있다. 지금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 기준에 맞는 사람만 받아들이려 한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더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문턱이 낮은 교회에는 탕자가 돌아온다.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에서 복음은 생명을 낳는다. 반대로 전통과 윤리라는 이름으로 담을 높이면, 교회는 스스로 문을 닫게 된다.
물에 빠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세운 구조소가, 깨끗함을 유지하려다 구조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이미 존재 이유를 잃은 것이다. 오늘 우리의 교회가 그 모습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교회는 예배당 화장실을 개방했다. 히터를 틀어 따뜻하게 유지하고, 늘 깨끗하게 관리한다. 아이들, 운동하는 사람들, 배달 기사들까지 자유롭게 드나든다. 그 결과, 완전 동네 화장실이 되니 지역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보게 된다.
이제 교회는 교도소 같은 건물이 아니라,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시장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영적 빈곤의 시대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더 열려 있어야 한다. 더 낮아져야 한다. 그리고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문턱을 낮추고, 변화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교회. 그곳에서 사람이 살아나고, 교회도 다시 살아난다. 복음을 빼고는 다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 결단이 오늘 교회를 다시 살리는 시작점이다.
이상문 목사 [두란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