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칼럼
송형관 선교사(태국)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섬길 종들을 택하시는데 있어 주권적이시다. 젊은 시절 나는 하나님이 정말 나를 부르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날을 고민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13년 이란 세월을 그림에 미쳐 살았다. 그림이 최고였고 유일한 행복이었던 나에게 또한 변할 수 없는 앞으로의 진로가 결정된 나에게 그 분의 부르심이 나의 진로를 새롭게 바꿔 놓으셨다. 그 부르심은 내 인생 중에 단 한 번 있었고 나는 믿음으로 그 분의 부르신 뜻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그 부르심에 순종하게 되었다.
그 분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후 성령께서는 나의 전 생애를 통해 복음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데 바치도록 위임권을 주셨고 강권적인 확신을 더하여 주셨다. 또한 아주 분명한 부르심과 소명을 확신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를 따르도록 부르셨다. 그리고 그 부르심 이후에 그들의 확실한 행동은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4:22)
그들은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았다. 나 또한 그 부르심을 경험하며 더 높고, 더 가치 있고, 더 거룩한 사명을 위해 13년 세월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림과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해야만 했다. 그 때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네가 나보다 그림을 사랑하느냐?” 바울을 이방인의 선교사로 부르신 하나님,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고 하신 하나님께서는 분명 나를 통해 주의 높고 위대하신 이름을 태국인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부르셨다는 확실한 소명 가운데 서게 하셨고, 나의 가벼운 발걸음을 선교지로 향하게 하셨다.
그러나 “어디로 갈까?”라는 고민 아래 막연히 남들이 많이 가는 중국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나의 연약하고 무지한 생각을 바꿔 주셨다. “네가 한 번도 이야기 해보지도 못하고, 만나 보지도 못하고, 함께해 보지 못한 그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냐?”는 질문이셨다. 나는 그 질문 앞에 도저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날을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은 나에게 태국이란 나라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곳에서 나는 그들과 직접 두 눈을 마주치며 함께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 어느새 그들이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 가리이다.”(시119:32) 이제 호기심이 생겼다! 그 호기심이 큰 관심으로 나를 이끌었으며 열린 마음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주셨고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준비된 발을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곳으로 서슴없이 옮기게 하셨다. 어디로 가야할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의 영적 멘토 신화석 목사님을 통해 인도선교사 윌리암 케리와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 그리고 중국의 허드슨 테일러의 이야기를 주로 듣곤 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은 그 분의 지혜에 따라 그의 종들을 흩어 놓으셨다.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그리고 베드로는 유대인에게로(갈2:7-8) 나는 태국인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