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교회들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사순절을 지키고 있을 줄 안다. 우리를 위하여 온갖 고난을 다 받으신 주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평소에 즐기던 것들을 절제하고 경건하게 보내는 이 사순절에, 지금부터 약 육십여 년 전에 영적 불모지였던 만주 땅의 우리 동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무명 여성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일제 치하에서 만주 땅 여러 곳에 교회를 세운 이 장한 분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 된 한 여성도 이었다. 조국의 교회 역사에 아무런 기록도 없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이 여성도의 생애를 증언해 주던 백발의 노 할머니는 목 메인 소리로 “그분은 만주 땅에서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동포들을 구원할 일념으로 동네마다 다니며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요즈음은 돈으로 교회를 세우지만 그분은 가난했기 때문에 오직 기도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다가 허기가 지면 들판의 쇠똥을 개울물에 씻어 그 속에서 소화가 되지 않은 옥수수 알갱이들을 찾아 끼니를 잇곤 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전에는 성경책의 가장자리가 붉은 색 이었다. 왜 성경책의 가장자리 부분을 붉은 색으로 칠했는지 그 까닭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순교의 붉은 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책을 펴고 진리의 말씀을 접하는 순간마다 자신에게 까지 도달한 이 영광스러운 복음이 순교자들의 피를 뿌리는 헌신과 희생을 통하여 전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려고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성경책 가장자리가 금빛으로 칠해져있다. 그 화려하고 멋진 금빛으로 칠해진 성경책과 같이 현대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고난과 희생보다는 현세의 번영과 성공을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덕목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피 묻은 복음을 가슴에 품고 불꽃같은 구령의 열정으로 그 복음을 증거 하던 믿음의 선진들을 보라. 십자가와 그들의 생애는 나눌래야 나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들은 모두 자기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적으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의 죽임을 당하셨다가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목 메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역만리 불모의 땅에 복음을 전하는 자로 가게 된 것은 자신의 종교적 결심이나 어느 한 교회의 선교 프로그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고난과 핍박의 현장으로 달려가게 한 것은 자신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영혼 안에서 살아 역사했던 십자가의 복음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그들로 하여금 영혼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주님의 고난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사순절을 지키고 있는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이러한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감격이다. 차가운 논리가 아니라 피 묻은 복음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이 땅을 고치고 교회가 회복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