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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여정(1)
외롭고 방황했던 시절, 그 속에서 만난 주님
2025-06-24 오전 9:15:00    성결신문 기자   


알바니아 주준성 선교사

누구나 그렇듯 저 역시 어린 시절, 여러 사연과 아픔을 안고 자랐습니다. 1980년대 초, 여섯 살 무렵부터 대한극장 앞 가판대에서 영화 벤허 책자를 팔며 세상과 처음 마주했고, 이후 초중고 시절 동안 신문 배달, 전단지 배포,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한 일이었다기보다, “자신의 필요는 스스로 해결한다”는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자립을 배우며 자란 것이었습니다. 그 경험들은 오늘날 제 삶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고, 자녀들에게도 책임감과 자립심을 가르치는 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형과 누나는 한창 바빴고, 어린 저는 늘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외로움은 자연스레 저를 바깥세상으로 이끌었고, 골목과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제 유일한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 초등학교 입학 전의 제가 퇴계로 일대를 정처 없이 떠돌다 파출소나 미아 보호소에 맡겨지곤 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머니 방 벽지 한편에는 미아 보호소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었고, 한때는 고아원까지 보내졌다가 간신히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 모든 고난과 외로움조차도 하나님의 섬세한 훈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의 방황과 아픔은 오히려 선교사로 가는 여정의 디딤돌이었고, 그 광야의 시간들은 주님의 손길 속에 다듬어지고 다져진 은혜의 과정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명동성당 인근에서 카톨릭 신앙생활을 잠시 하다, 가족이 강남으로 이사하며 동네 개신교 주일학교 전도 행사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신입 학생에게 주어지는 환영 선물과 따뜻한 인사가 어린 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 여러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새한교회, 영동중앙교회, 충현교회, 소망교회, 강남중앙침례교회 등 큰 교회들이 주 대상이었고, 그 신앙 여정은 복음을 향한 열정보다는 외적 만족을 좇는 어린 시절의 표류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개인 서류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출생과 가족 관계에 얽힌 아픈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충격은 내면의 외로움과 방황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결국 사춘기의 혼란과 일탈로 이어졌습니다. 크진 않았지만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걸으며 자존감과 정체성을 잃어갔고, 무기력함과 공허함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권유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사당동의 작은 교회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전처럼 금세 떠날 생각이었지만, 작은 교회의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은 제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그곳은 결국 제가 ‘영적 모교회’라 부르게 된 신앙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차근차근 배우며 신앙의 뿌리를 내렸고, 목사님의 설교를 정성껏 메모하며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 교회는 대학 시절 선교사를 꿈꾸며 휴학을 결심했을 때 저를 단기 선교사로 파송해 주었고, 지금까지도 30년 넘게 후원과 기도로 제 사역을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그 작은 교회에서 받은 사랑과 배움은 한 시절의 기억을 넘어, 제 삶과 사역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일 중 하나는, 제가 신앙 안에서 성장한 후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해 신앙의 길로 이끈 일입니다. 지금은 어머니께서도 권사로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동역자가 되셨습니다.

신앙의 시작, 그리고 선교사로 부르심

선교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였습니다. 저는 당시 서울 강남 8학군에 속한 압구정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이후 신학대학에 진학했을 때 ‘강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저의 실제 삶과는 무관한 다른 시선과 관계로 또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곳은 공립학교로 종교 활동이 금지된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선생님께서 주도하에 방과 후 비공식적 기독학생반(KCS)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어갔습니다.   

이후 저는 고교 졸업 때까지 전교생 사이에서 입에 오를 정도로 적극적으로 친구들에게 기독학생반 모임을 권유하고 이끌었습니다. 선후배들과 함께 다양한 선행 활동을 펼치며, 학교 내에서 선한 기독 서클로서의 이미지를 점차 쌓아갔습니다. 비록 ‘비공식 클럽 모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결국에는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매주 목요일마다 학교 앞 소망교회 찬양 집회에 서클 선후배들과 함께 참석하면서, 이전의 방황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적 여정 속에서 저는 단순히 일상적인 대학 진학이나 평범한 삶이 아닌, 사역자의 길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고등학교 1학년, 5월 소망교회 목요 찬양 집회에서였습니다. 집회 중, 청장년들을 향한 선교의 부르심이 선포되었고, 그 순간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던 저는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날의 경험은 제 삶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로움과 세상이 주는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왔던 저에게, 주님을 만나 이렇게 내 자신이 회복되고 삶의 목적을 찾고 살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복음을 통한 회복이며, 이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오늘 저에게 주어진 이 선교적 부르심에 제가 응답하겠습니다.”

곧 선교는 복음을 통한 회복을 경험한 우리가 그 회복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여정이였고 그날, 저는 제 삶을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단은 여정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했고, 방황하던 십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 곁에 좋은 선후배들과 친구들을 붙여주셨습니다. 

또한, 가족 같은 작은 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과 교역자분들을 통해 저를 다듬어주시고, 회복시키시며, 성장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선교사가 되려면 반드시 신학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목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교사가 되기 위해 1993년 신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신학대학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선교사로서의 구체적인 준비 과정을 밟는 첫 단계였습니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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