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여정(2) 알바니아 주준성 선교사
93년 성결대에 입학한 후, 대학 생활의 자유로운 시간과 다양한 사역 기회 속에서 한때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모교 기독서클과 대학 동아리(마르튀스) 활동에 집중하며, 국내 목회와 찬양 사역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 속에 “하나님의 일이면 어떤 방식이든 괜찮지 않을까?”라며, 처음 가졌던 선교적 부르심을 마음 한켠에 접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군에 입대했지만, 오른쪽 눈의 문제로 의가사 전역하게 되었고, 이후 삶의 방향을 잃은 듯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해 여름, 한양대에서 열린 ‘94년 선교한국대회’에 참석하며, 다시금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선교단체 간사들과의 깊이 있는 대화는 선교사의 길에 필요한 구체적인 준비를 고민하게 했고, 마지막 날 수천 명이 함께한 선교 집회에서 저는 조용히 다시 일어섰습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닌, 이전 헌신을 되새기며 다시 결단한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선교는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지속적인 여정이었던 것입니다.
선교 헌신 이후, 한 걸음 더 나아가며
1994년 선교한국대회에서 선교사로의 부르심을 확신한 후, 그 결심이 식지 않도록 저는 즉시 실천에 나섰습니다. 그해 가을, 해외선교전문단체(GMP)에서 진행하는 12주 과정의 선교 훈련에 등록했고, 휴학 중이던 저는 낮에는 선교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기도편지 정리와 우편 발송 등 실무를 도우며, 밤에는 편의점 야간 근무로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피곤한 날들이었지만 매주 훈련 시간이 기다려질 만큼 몰입했고, 선교가 무엇이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조금씩 배워갔습니다.
먼저 1995년, 21세의 저는 선교계의 주요 이슈였던 미전도종족 선교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한국선교정보연구원(KRIM)이 주관한 ‘Camp Joshua’ 훈련에 참여했습니다. 필리핀에서 한 달간 진행된 이 훈련을 통해 선교지 연구와 전략 수립을 배웠고, 현장을 직접 체험하며 선교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귀국 후 선교단체에서 자원봉사를 이어가며 실무 사역을 도왔고, 선교를 향한 마음도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1997년, 대학 3학년을 마친 뒤 저는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재정과 주변의 후원을 바탕으로 1년간 단기 선교사로 필리핀에 파송되었습니다. 모교회는 이때부터 저를 예비 선교사로 인정하며 공식적으로 파송해 주었습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실제 선교지에서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장기 선교사로 부르셨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출국 후에는 4개월간 FETC(타문화적응훈련)를 받으며 선교지에 대한 이해를 더했고, 사역지 배치를 앞둔 여러 선교사 가정들과의 공동생활을 통해 단순한 개인 헌신을 넘어 ‘가정을 이루어 선교지로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고민과 준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훗날 가정을 이룰 제 자신의 미래도 진지하게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1년의 단기 사역을 마칠 무렵, 저는 필리핀에 오며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선교사로 부르셨다는 확신, 그리고 그 부르심은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기꺼이 순종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훈련생에서 간사로 부르심의 인도함을 받으며
1998년,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마지막 학기를 마치며 GMP 선교단체에서 본격적으로 간사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훈련생이 아닌, 새로운 훈련생들을 돕고 돌보는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해 선교한국대회에는 스태프로 참석해, 선교에 관심 있는 청년들과 선교후보생들에게 선교지를 소개하고, 선교지로 나아가기까지의 상담과 동원을 담당했습니다.
이 시기에 같은 단체에서 인천지부를 개척하던 한 간사님과 교제를 시작했고,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교제 끝에 대학 졸업을 앞두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결혼을 결단했으며, 이후 선교 본부 사역을 함께 하며 가정을 통한 부르심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역의 여정을 함께 하며 우리가 분명히 깨달은 것은, 선교는 장소가 아니라 부르심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라면, 그곳이 바로 선교지였습니다.
국내에서 선교단체의 운영과 본부 사역을 경험하며, 해외만큼이나 본부에서 선교사를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한국교회와 선교계 안에서 본부 사역자는 종종 잊히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동일하게 후원을 모금해야 했지만, 교회들은 이를 잘 알지 못했고, 재정적 어려움도 뒤따랐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본부 사역자들이 필드 경험이 없어, 현장의 필요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원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선교사가 가장 가지 않으려 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물었고, 그 답은 ‘본부 사역’이라는 고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곳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그 확신이 우리 안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실전 선교지, 알바니아를 향한 부르심
단체장과의 면담 후, 우리는 본부에 바로 헌신하기보다는 선교지에서 충분한 현장 경험을 쌓고 돌아오는 것이 더 낫다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첫째 아이가 생후 6개월이 되던 해, GMTC에서 6개월간 합숙 훈련을 받았고, 신학 학부와 선교대학원 수료 과정을 거치며 은사와 사명을 점검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단체 내에서 가장 필요가 절실한 지역이 알바니아라는 마음을 주셨고, 결국 그곳으로 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는 알바니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고, 한국 대사관조차 없는 상황이었지만, 먼저 가 있던 GMP 선배 선교사들이 그 땅에서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긴 기도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했고, 28세의 나이에 18개월 된 첫째와 갓 100일 지난 둘째를 안고, 사전 답사 없이 알바니아로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