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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성지순례 ①
사도행전 성지순례: 소아시아 교회들을 찾아서
2026-04-02 오전 11:03:00    성결신문 기자   



네압볼리(현지 지명 까발라)에서 우리는 출발하여 튀르키예로 넘어가는 국경인 입살라로 향했다. 버스로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출입국 절차를 마무리하면 타고 왔던 버스를 그대로 타고 국경을 넘어 10분 정도 더 들어가 대형 마켓(미그로스) 주차장에 들어간다. 

거기서 튀르키예 버스를 만나 갈아타고, 그리스 버스는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 튀르키예는 그리스와 달리 현지 가이드가 전 일정을 반드시 동행하게 되어 있다. 튀르키예로 입국한 이후 첫 일정은 사도 바울이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향하게 됐던 드로아 항구이다. 이곳을 감으로써 지난 그리스의 2차 전도여행 마지막 퍼즐이 완벽히 맞춰지게 된다. 

고대 드로아는 일리아드 오딧세이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의 배경이었던 도시이다. 이 도시는 후에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로 다시 건설된다.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는 소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로마 시대에도 무역과 교통의 중심 도시였다. 

드로아 항구로 내려가다가 로마 시대의 고대 도로가 있는 곳에 내려 잠시 그 길을 걷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처음 계획이었던 에베소가 어그러지고, 무시아로 가는 것도 막힌 상태에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갑갑함 속에 인도함을 구하며, 드로아로 걸어가던 사도 바울 일행의 그 길을 오늘 우리가 동일하게 걷고 있는 게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사도 바울은 행 16:8~11에서 자신의 처음 계획이었던 에베소로 가는 길이 막힌 이후 이곳 드로아에 들어와 다음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머무는 도시마다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모든 길이 막힌 후 드로아로 갔을 때도, 이곳 대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며 다음 인도하심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곳 드로아 역시 자신의 계획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 드로아에 도착한 그 날 사도 바울은 밤에 환상으로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시는 줄 깨닫게 된다(행 16:8~10). 이때 그는 곧바로 마게도냐로 가고자 힘썼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후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막바지에 에베소를 나와 미둘레네를 거쳐 드로아에 도착했을 때, 복음을 전할 문이 열렸지만, 디도를 만나지 못한 게 마음에 불편해 곧장 드로아를 떠나 마게도냐로 떠나게 된다(고후 2:12~13). 

그랬던 그가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까지 내려갔다가 배로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고자 계획하며 드로아를 다시 방문할 기회는 사라지나 했는데,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알고 마게도냐를 통해 돌아가는 걸로 일정이 바뀌면서 드로아를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사도 바울은 어렵게 열린 드로아의 방문을 위해 이번에는 여러 동역자들을 미리 드로아에 보내어 거기서 모이기로 한다(행 20:3~5). 아마도 처음 드로아에 왔을 때, 그리고 디도의 일로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서둘러 떠났던 아쉬움을 이번에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제대로 풀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드로아에서 이레를 머물며 주일 예배를 드리던 마지막 날, 밤늦게까지 말씀을 나누다가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 창틀에서 졸다 떨어져 죽게 되는데, 그를 다시 살리고 밤새워 말씀을 나눈 뒤 드로아를 떠나게 된다(행 20:6~11). 

이렇게 드로아는 사도 바울에게 유럽(마케도냐)으로 전도의 문을 열어준 의미 외에도, 마음을 많이 쏟았던 도시임을 알 수 있다. 현장을 나오니 여러 중첩된 얘기가 한 번에 정리될 뿐 아니라 그 당시 사도 바울의 마음에 더욱 공감하게 되면서, 성경이 정말 생생하게 다가오게 된다.

드로아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버가모교회를 향했다. 버가모는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하자 그의 부하 대장 리시마쿠스가 산의 정상에 성을 쌓고 아크로폴리스를 형성한 곳이다. 리시마쿠스 사후 버가모 왕국이 만들어졌고 이후 버가모는 로마 시대를 거쳐 비잔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그리고 문화와 의학의 도시로 번영하였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아시아의 수도로써 최대로 번영하였다. 

버가모 도시의 큰 특징은 도서관과 의료시설이다. 버가모의 도서관(당시 20만 권 소장,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 규모)은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을 위협하는 수준이었고, 이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버가모를 의식하여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시킨다. 

이때 새로운 대체재가 나온 것이 양피지이다. 주전 1세기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화재로 큰 손상을 입었을 때, 클레오파트라가 매우 상심하게 되자, 그의 애인이었던 로마 집정관 안토니우스가 군대를 동원하여 버가모 도서관의 책들을 알렉산드리아로 옮긴 일도 있었다. 

도서관과 더불어 버가모의 유명한 것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온을 섬기던 신전과 치료센터이다. 이곳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도 방문할 정도였는데, 기원전 4세기부터 주후 3세기까지 거의 800년을 소아시아에서 의료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버가모 도시는 산 중턱에 있기에 이곳을 방문하려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산 아래 버가모교회만 방문하고 떠나게 되는데, 시간이 있으면 꼭 도시를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계시록에서는 이곳에 사단의 권좌가 있었다고 말하는데, 많은 이들이 제우스 신전 내지는 하드리아누스 신전으로 이해한다. 붉은 벽돌로 지은 교회 건축물은 밑으로 셀리누스 강이 흐르도록 설계되었다. 본래 2세기에 이집트 신인 세라피스를 위해 지은 것이어서 세라피스 신전이라고도 한다. 신전의 규모는 가로 100m, 세로 260m에 이르고 높이도 20m에 달해 그 규모가 대단하였으나 지금은 건축물의 벽채만 남아있다.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가 국교로 되면서 내벽을 쌓아 교회로 개조하여 사도 요한 교회로 사용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버가모교회는 비잔틴 시대의 교회로서 요즘은 외벽 공사 중이라 내년에 오픈하기에, 이곳을 방문하더라도 밖에서 멀리 엿보는 정도다. 이제 우리는 다시 내일 여정을 위해 쿠사다시 항구에 있는 숙소로 달려갔다. 이렇게 터키에서의 첫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창밖에 보이는 노을이 참 아름답다. 

튀르키예 순례 2일째, 우리는 아침 일찍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핵심지이자 7대 교회 중 하나가 있는 에베소로 향했다. 에베소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 유적으로, 기원전 6세기 후반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시 쇠퇴하였다가,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된 뒤 새로 건설되면서 헬레니즘 도시로 부흥하였다. 

주전 2세기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서 지중해 동부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전성기를 누렸으며,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의 7대 교회로서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 목양을 한 곳이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소천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기에 초대교회 역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도시이다. 

이곳 에베소에는 주전 6세기에 건조된 고대 7대 불가시의로 알려진 아데미 신전과 로마 제국 시대에 건조된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마식 건축물인 도미티안 신전 (주후 1세기), 그리고 셀수스 도서관, 원형대극장 등이 유명하다. 아데미(그리스어로 아르테미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에베소 사람들에게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받았는데, 사도 바울 팀의 선교가 활발해지면서 은으로 만든 신상을 팔던 상인들과 갈등을 겪게 된다(행 19:23~27). 이후 초대교회를 박해하던 대표적인 황제인 도미티안 황제를 신으로 세운 신전으로 인해 당시 에베소 교인들은 박해와 갈등을 겪게 된다.  

에베소엔 크게 두 개의 광장(아고라)이 있다. 메인 매표소에서 들어가게 될 때, 도시 초입에 서 만나는 State Agora는 도시 지형상 윗쪽에 위치하고 있어 ‘윗쪽 아고라(Upper Agora)’ 또는 ‘정치 아고라’로 불린다. 이곳에서 주로 선거, 집회 등이 있었기에 에베소의 중심지였다. 아래쪽 아고라는 셀수스 도서관 뒤쪽으로 상업지역에 위치하였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두란노 서원과 바울과 그의 제자들이 주로 복음을 전하던 곳은 아래쪽 아고라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셀수스 도서관은 주후 135년, C. 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의 무덤을 모시고, 그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으며, 약 1만 2000여 건의 두루마리 장서를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셀수스 도서관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운명, 지혜, 지식을 상징하는 여신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연도상 이 도서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두란노 서원은 앞으로 이 도시에 세워질 도서관의 기초였다고 볼 수 있겠다. 

셀수스 도서관을 지나 원형대극장이 있는 곳까지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길을 ‘마블거리’라고 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길을 통해 원형극장으로 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순례객들은 셀수스 도서관 아래쪽 옆으로 잔디가 깔려진 곳에서 원형극장까지 난 길을 추천하고 싶다. 왜냐면 이곳이 상업 아고라이기에 사도 바울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 은세공업자들과 갈등으로 원형극장까지 잡혀 끌려간 성경의 실제 장소이기에, 성지순례를 한다고 하면 이 길이 훨씬 순례에 부합한다. 

에베소의 원형극장은 2만 5천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 중의 하나이다. 이 야외 원형극장은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주후 1~2세기경의 유적이다. 현재는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지만, 그곳에 앉아 행 19장을 묵상하면 바울의 제자들이 핍박받던 그 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입구 쪽에서 제자들을 구하고자 극장에 들어가고자 애쓰던 사도 바울과 그를 말리는 사람들 간의 실갱이도 보이는 듯하다. 

에베소 도시를 나와 우리는 사도 요한 무덤교회로 향했다. 사도 요한은 12사도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 이유는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해 줄 것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요 19:26~27). 전승에 따르면 그는 끓는 기름에 넣어지는 등, 여러 번 죽을 고비를 겪었으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도미티안 황제는 그를 밧모섬에 유배를 보내는데, 거기서 그는 셋째 하늘을 갔다 오게 된다.

유배가 풀린 뒤 에베소에 돌아온 그는 이곳에서 교회를 감독하다가 소천한다. 그랬기에 이곳 에베소에 그의 무덤이 있게 된 것이다. 주후 4세기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그의 무덤에 목재로 된 작은 기념 교회가 세워졌다가, 6세기 유스티누아스 1세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습의 교회로 증축되었다. 

이 교회를 지을 때는 주변에 있던 아데미 신전의 대리석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교회의 심장부인 본당은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고, 제단이 있는 앱스에는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다. 이 건축물은 동로마 제국 시절에는 소아시아에서 최대의 교회였다. 교회 입구는 초기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받아 순교하던 곳으로, ‘박해의 문’이라 불린다.

이제 에베소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사데 교회로 향했다. 사데(‘남은 자’라는 의미)는 고대 리디아 왕국의 수도로서, 사금이 많이 나던 곳이었기에 ‘황금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부와 명성을 가졌던 도시이다. 그 당시 얼마나 부자인지를 물을 때 “네가 사데의 왕만큼 부자냐?”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을 만큼 사데라는 도시는 부요함의 상징이었다. 

사데는 강가에서 사금이 많이 났기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이다스 손’의 배경이 된 곳이다. 유적 발굴 중 4~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큰 유대인 회당이 발굴되었는데, 이를 통해 사데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 금이 많이 나고,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기에 장사와 환전, 대부업에 능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을 것이다. 

사데에는 에베소와 마찬가지로 큰 아데미 신전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거대한 신전 바로 앞부분에 비잔틴 시대의 교회가 함께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가 국교인 시대임에도 다른 지역들보다 교회의 규모가 무척 작은 모습이다. 발굴된 유대 회당이나 아데미 신전에 비해 교회가 작은 것을 볼 때 당시 사데 도시는 교회보다 세상의 영향력이 훨씬 더 컸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사데 교회는 교회적으로 환난이나 핍박을 받았다는 말이 없다. 도시는 부유한 분위기이고, 교회는 특별한 환난이나 핍박이 없다는 것은 일견 하나님의 은혜 속에 안정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축복받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칭찬이 없으시기에 이는 교회가 세상과 타협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그곳에 아직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이 있다고 말씀하시므로 세상에 친화적인 것은 곧 옷을 더럽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데는 주후 17년에 큰 지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지원으로 도시가 재건되었다. 그리고 사데는 금이 많이 나는 부유한 도시였기에 페르시아, 그리스 시대를 거쳐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또한 지진 등으로 인해 재난들이 많았던 곳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삶과 죽음, 생로병사, 내세 등에 대한 관심이 많이 컸는데, 이로인해 보이지 않는 신들, 대자연의 정령들을 숭배하는 사상이 발달했다. 그러한 사데에서 초대교회의 특징인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치는 역사들이 많이 일어났다면, 분명 사데 교회는 살아있는 예수님의 이름을 가진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사역과 관계없이 그들의 영적상태를 정확히 지적하셨다.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을 가졌지만 실상은 죽은 자다” 우리는 이 책망을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던 마 7:22~23과 연결해 볼 수 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고치고 많은 권능을 행했던 이들에게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희를 모른다 내게서 떠나라”고 하신 것! 이게 곧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비잔틴 시대의 조그만 사데교회에서 능력을 가진 교회라 하더라도 세상과 친하고, 핍박이 없는 교회는 결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음을 실감하며, 오늘날 나와 몸된 교회가 다시 한번 깨어나기를 간구하고 다짐하며 그곳을 나왔다. 
우리는 그 다음으로 빌라델비아교회로 향했다. ‘빌라델비아’ 지역은 ‘필로스(사랑)+아델포스(형제)의 합성어’로 ‘형제사랑’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고대로부터 포도 산지로 유명했다. 포도나무는 아무 토양에서 자라지 않기에 밀이나 보리로 만든 맥주에 비해 가격이 비싼 수출품이다. 그런데 초대교회 예배에서 제일 중요한 애찬을 위해 포도주는 필수였기에 여기서 나는 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소아시아 6개 교회에 성찬을 위해 나눠졌다고 한다. 빌라델비아교회가 그 지역의 이름처럼 형제사랑으로 주님의 한 몸을 이루는 형제 교회들에게 예배를 위해 비싼 포도주를 나누었던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빌라델비아 교회터는 빌라델비아 도심지에 있는데, 비잔틴 시대의 성 요한교회로서, 그 교회 아래에는 고대 교회의 터가 있다. 빌라델비아 도시도 사데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진대에 있어 잦은 지진으로 성벽이나 건물이 자주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오늘날 남아있는 교회터의 기둥은 다른 지역의 건물 기둥보다 훨씬 두꺼운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감안하면 지금 교회 이전 교회터에서도 기둥은 여전히 두껍게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주님은 그러한 빌라델비아 지역 건물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말씀하셨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말씀(삼하 6:2)을 지켜 이기는 자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과 신부된 자(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신랑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새겨 주신다. 그리고 그에게 다윗의 열쇠를 주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게 하신다. 빌라델비아교회의 웅장한 기둥을 보며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지켜 이기는 자가 되므로 천국의 기둥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했다. 이제 오늘의 긴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숙소인 파묵깔레(히에라볼리)로 향했다. 

글·송창엽 목사
시티미션교회 협동목사, 헤븐리라이트미니스트리 대표
debtor610@hanmail.net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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