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다.
세계 최대 갑부요 신앙인으로서 선한 일을 많이 했던 사람 중 하나인 록펠러가 사업을 확장하며 돈을 벌 때,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돈이 얼마나 더 있어야 만족할 수 있습니까?” 록펠러는 “조금만 더요.”라고 답했다. 바로 이 ‘조금만 더’가 결국 인생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 모두는 만족이 없다. 지나친 편의주의를 앞세운 과학과 첨단기술! 그리고 그 기기들! 정말 대단하고 또한 고맙다. 그리고 그 과학이 도대체 어느 선까지 올라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느 과학자가 하나님께 그랬다.
“우린 이제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하며 그 과학자가 땅에서 흙 한 움큼 쥐고 사람을 만들려는 순간, 하나님이 “이보게, 그 흙은 내 것 아닌가! 자네 걸로 하세…” 오만불손한 과학, 오만불손한 인간, 이젠 좀 겸손해져야 되지 않을까?
부자로, 왕으로 누릴 것 다 누렸던 솔로몬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도서 1:2-3),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전도서 1:8)
성도는 무엇으로 어떻게 사는가?
헛된 세상, 만족이 없는 세상에서 모두가 방황할 때 “그리스도인, 성도는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젠 좀 하나님 앞에 모든 것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진정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연습, 성결의 연습은 범사에 유익하여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했다.(디모데전서 4:8). 많은 성도들이 QT도 하고, 생활 속에서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고민하며 경건하게, 성결하게 살려고 노력을 해보지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그리스도인의 덕목이 없고 인내가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하곤 한다. 여기 18세기 미국에서 스스로 덕목을 정해놓고 체계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건하게 살려고 했던 한 사람이 있다. 곧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프랭클린의 덕목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중의 한 명이며 목사가 되기를 원했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년 1월 17일 ~ 1790년 4월 17일)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목사가 되려고 했던 뜻을 접고, 소년 시절 미국 회중파 교회 목사 크튼 매더가 쓴 『선행록』과 그 후 순회 설교가 조지 휫필드의 설교와 특히 갈라디아 5장 22절과 23절의 성령의 열매에 영감을 받아, 13가지 덕목을 정해놓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철저하게 베이도록 노력을 했다. 그 13가지 덕목을 살펴보면 1)절제-“배부르도록 먹지 마라. 취하도록 마시지 마라.” 2)침묵-“자타에 이익이 없는 말을 하지 마라.
쓸데없는 말은 피하라.” 3)질서-“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두라. 일은 모두 때를 정해서 하라.” 4)결단-“해야 할 일은 과감히 결심하라. 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행하라.” 5)절약-“자타에 이익이 없는 일에는 돈을 쓰지 마라. 낭비하지 마라.” 6)근면-“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유익한 일에 종사하고 무용한 행위는 끊어버려라.” 7)진실-“일부러 속이려 하지 말고, 순수하고 정의롭게 생각하라. 모든 언행은 공정하게 하라.” 8)정의-“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해로운 일을 해서도 안 된다.”
9)중용-“극단을 피하라. 내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남의 비난과 불법을 참으라.” 10)청결-“신체. 의복, 주택에 불결한 흔적을 남기지 마라.” 11)침착-“사소한 일, 보통 있는 일, 피할 수 없는 일에 침착함을 잃지 마라.” 12)순결-“건강이나 자녀 때문이 아니면 성 관계를 삼가라. 감각이 둔해지거나, 몸이 약해지거나, 자신과 타인의 평화와 평탄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13)겸손-“예수와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워라.”이다.
경건의 연습
프랭클린은 본인 스스로가 경건한 삶을 위해 철저히 노력도 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경건한 삶을 몸에 베이도록 하기를 위해서는 기술을 익히듯 해야한다고 했다. 성도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성도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물론 성령님의 역사로 거룩해 지지만 그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데 그 노력이 곧 습관 드리는 것이며 기술을 익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프랭클린은 1760년에 로드 케임스라는 친한 친구에게 자신이 『덕의 기술』(The Art of Virtue)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1990년대에 조지 로저스가 Benjamin Franklin’s The Art of Virtue: His Formula for Successful Living을 씀). 그 이유로는 많은 사람들이 악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며, 또 선하게 살고 싶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선하게 살기 위해 결심도 하고 노력도 해보지만, 그 방법이 옳지 않아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덕의 기술』을 쓰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얼마만큼의 덕을 타고나지만, 그렇다고 모든 덕을 다 지니고 태어나지는 않으며, 또 덕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원하여 얻는 것과 그렇게 얻는 것을 보전하는 일은 미술이나 항해, 건축과 같은 기술을 익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18세기에 미국에서 살았던 한 신앙인의 경건의 연습이 지나친 물질중심 사상과 지나친 이기주의 사상의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