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호 목사(평강교회)

불교에서 속세를 떠나 도를 닦는데 마음을 기울이는 중을 이판승(理判僧)이라고 하고, 절의 재산을 관리하고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중을 사판승(事判僧)이라고 하는데, 도를 닦는데 전념해야할 이판승이 도 닦는 데는 전념하지 않고 재물이나 사무 처리하는 직위 등에 연연하여 사판승으로 전락하게 되면, 결국은 이판(理判)이 사판(事判)되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판이 되는데 이것을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고 한단다.

그런데 요즈음의 한국 기독교가 그런 길을 가는 것 같다. 작년부터 감리교가 감독회장 자리를 두고 분열되어서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올해에는 한기총(韓基總)이 대표회장 선거를 치루면서 직전 회장이 “자신이 회장 선거를 하면서 많은 돈을 썼다”고 발표하면서 한기총이 타락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거기다가 대표회장 자리를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고, 그 와중에 “1억을 주면 해결해주겠다”고 제안하는 분의 전화통화 녹취록과 녹음자료가 발표되면서 증폭되고 있다.

요즘은 교단의 총회를 앞두고 임원선거 운동이 과열되고 있고 특히 금품수수 이야기가 많이 나돌고 있어서 비난을 받고 있다. 어떤 지방회의 목사대의원들은 시내의 어느 호텔로 후보자들을 불러내서 1인당 8만원 상당의 저녁을 사게 하고 각각에게 적지 않은 돈 봉투를 달라고 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장로대의원들은 후보자 측근(목사)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하였다고 하면서 “어떻게 장로들이 목사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상황이 되었는지 한심하다”고도 한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예 돈 봉투를 바라면서 매년 총회 때만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고도 하고, 매년 총회철만 되면 돈을 주면 표를 모아주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작년에는 이사장이 되기 위해서 200만원을 주었던 사건이 밝혀져서 교단을 시끄럽게 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학교 식당 업자에게 돈을 받은 사건으로 인하여 설왕설래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현상들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본질을 벗어난 일들이다. 목회자와 교회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들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성도들을 돌보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일들을 더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하여 지방회나 총회를 구성하고 총회 임원들도 뽑는 것이고 신학교를 세우고 이사장이나 총장을 세우는 것인데, 그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면서 상대방을 헐뜯고 다니는 것이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성결(聖潔)을 표방하는 교단과 학교의 지도자들이 되겠다는 분들이 해야만 하는 일이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이판이 사판되는 것이고,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것이며, 현대판 성직매매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성직매매는 타락한 중세 천주교의 한 현상이었고 종교개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원로목사회 임원들이 모여서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들을 염려하면서, 투표권 때문에 원로들이 그런 오명을 쓰게 되므로 앞으로는 원로대의원들은 발언권만 갖고 투표권은 반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인즉 원로들에게 총회나 지방회의 대의원권을 주는 것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예성교단에만 있다고 한다. 다른 교단들은 증경총회장에 한해서만 총회의 언권회원권을 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과열된 총회임원 선거와 금품수수 등으로 타락일로에 있는 현 상황에서, 원로목사님들의 고뇌어린 결정이 교단정화의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